본 글은 세무/금융 조언이 아니며, 실제 과세 체계는 인출 시점의 세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.
지난 글 S&P 500 ETF, 고르는 것보다 중요한 ‘운용 전략’ 3가지 (연금 계좌 및 매수 타이밍) 을 통해 연금저축에서의 ETF 운용 방법을 알아봤고, 또한 지금까지 우리는 ‘S&P 500 ETF’를 ‘연금저축/IRP’에 모아가는 적립식 투자를 배웠습니다. 이 과정은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키우는 단계였습니다.
이제는 다 자란 나무에서 ‘열매를 수확하는 법(인출)*을 배워야 할 차례입니다. 연금 계좌는 입금할 때 혜택을 준 만큼, 출금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엄격합니다.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빼다가는 애써 불린 수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토해낼 수도 있습니다.
이 글에서는 내 돈이 빠져나가는 법적인 순서와 세금을 최소화하는 인출 전략(1,500만 원의 법칙)을 완벽하게 정리해 드립니다.

Table of Contents
1. 내 마음대로 못 뺀다? 정해진 ‘인출 순서’
연금 계좌(연금저축, IRP)에 들어있는 돈은 겉보기엔 다 같은 돈처럼 보이지만, 세법상으로는 ‘꼬리표’가 붙어 있습니다. 그리고 인출할 때는 법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‘세금 부담이 적은 돈’부터 먼저 빠져나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.
이 순서는 우리가 임의로 바꿀 수 없습니다. (무조건 1순위부터 차감됩니다.)
| 인출 순서 | 자금의 성격 (꼬리표) | 세금 (과세율) | 비고 |
|---|---|---|---|
| 1순위 | 세액공제 받지 않은 원금 | 0% (비과세) | 페널티 없이 언제든 중도 인출 가능 |
| 2순위 | 이연 퇴직소득 (퇴직금) | 퇴직소득세율 (70~60%) | 퇴직금을 IRP로 받았을 때 해당 |
| 3순위 | 세액공제 받은 원금 + 운용 수익 | 3.3% ~ 5.5% (연금소득세) | 여기가 핵심! (연간 한도 관리 필요) |
* 자세한 연금 인출 순서와 세금 정보는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 교차 검증해 보실 수 있습니다.
① 1순위: 세액공제 받지 않은 원금 (비과세)
연금저축 납입 한도(연 1,800만 원) 중 세액공제 한도(연 600~900만 원)를 초과하여 납입한 금액입니다.
- 특징: 이미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을 넣은 것이고(과세 후 소득), 세액공제 혜택을 안 받았으니 뺄 때도 세금이 없습니다.
- 오해와 진실 (유동성): 많은 분이 “연금저축에 돈을 넣으면 55세까지 절대 못 꺼내는 것 아닌가요?”라고 오해합니다. 하지만 이 1순위 자금은 55세 이전이라도 세금 불이익 없이 언제든 자유롭게 인출이 가능합니다. 즉, 여유 자금을 넣어두었다가 급할 때 꺼내 쓰는 ‘비상금 파킹통장’처럼 활용해도 됩니다.
- 꿀팁 (담보대출): 당장 목돈이 필요한데 인출하기는 아깝다면, 계좌를 해지하지 않고 ‘연금 담보 대출’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. 보유한 펀드/ETF를 담보로 비교적 저금리에 대출이 가능합니다. (물론 빚을 내는 것은 추천하지 않지만, 급박한 상황에서 계좌를 깨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.)
② 2순위: 퇴직금 (이연 퇴직소득)
회사를 그만두고 IRP로 받은 퇴직금입니다.
- 특징: 원래 냈어야 할 퇴직소득세를 안 떼고 넣어둔 돈입니다. 연금으로 수령 시 원래 퇴직소득세의 30~40%가 감면됩니다. (매우 강력한 절세 혜택)
※ 퇴직금의 경우 개인별 상황(근속연수, 수령액 등)에 따라 과세 체계가 매우 상이하므로, 본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인출 순서로서의 의미만 설명드립니다.
③ 3순위: 세액공제 받은 원금 + 운용 수익 (연금소득세)
우리가 연말정산으로 환급받았던 그 원금과, S&P 500 ETF가 불어나서 생긴 수익금입니다.
- 특징: 이 돈을 꺼낼 때 비로소 ‘연금소득세(3.3%~5.5%)*가 부과됩니다.
- 주의 (절대 금물): 간혹 “목돈이 필요하면 16.5% 세금 내고 꺼내 쓰면 되지”라고 가볍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. 절대 안 됩니다.
- 55세 이전에 이 돈을 건드리는 것은 인출이 아닌 ‘해지(계약 파기)’로 간주되어 기타소득세(16.5%)가 부과됩니다.
- 이는 그동안 매년 꼬박꼬박 받았던 세액공제 혜택을 전부 토해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.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으니, 이 3순위 자금만큼은 ‘없는 돈’ 셈 치고 55세까지 절대 봉인해야 합니다. (단, 천재지변, 파산, 개인회생, 의료비 등 법정 부득이한 사유가 인정될 경우 저율 과세로 인출 가능합니다.)
2. ‘연금소득세’ 얼마나 낼까? (나이가 깡패다)
3순위 자금(공제받은 원금+수익)을 만 55세 이후에 ‘연금 형태’로 수령하면, 나이에 따라 저율 과세가 적용됩니다. 늦게 받을수록 세금이 줄어듭니다.
- 만 55세 ~ 69세: 5.5%
- 만 70세 ~ 79세: 4.4%
- 만 80세 이상: 3.3%
즉, S&P 500 ETF로 자산을 10배 불렸어도, 80세 이후에 인출하면 수익의 고작 3.3%만 세금으로 내면 됩니다. 일반 계좌의 배당소득세(15.4%)나 해외주식 양도세(22%)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혜택입니다.
3. 핵심 전략: ‘연 1,500만 원’의 법칙을 기억하라!
“그럼 55세 넘으면 무조건 5.5%만 떼어가나요?” 아닙니다. 여기서 가장 중요한 ‘사적연금 분리과세 한도’가 등장합니다.
[3순위 자금]의 연간 인출액이 ‘1,500만 원’을 넘느냐, 안 넘느냐가 운명을 가릅니다.
Case A: 연간 수령액 1,500만 원 이하
- 세금: 3.3% ~ 5.5% (분리과세 종결)
- 평가: Best 시나리오. 세금 부담 없이 연금을 수령하는 가장 이상적인 구간입니다. 월 125만 원 수준입니다.
Case B: 연간 수령액 1,500만 원 초과
- 세금: 전액에 대해 16.5% 분리과세 선택 가능 (또는 종합소득과세)
- 평가: 1,500만 원을 단 1원이라도 넘기면, 초과분이 아니라 수령액 전체에 대해 16.5%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.
[심화 분석] “1,500만 원 넘게 뽑으면 손해일까? (vs 해외 직투)”
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의문을 제기합니다.
“아니, 몇 십 년 죽어라 굴려서 20억, 30억 만들면 뭐 하냐? 연 1,500만 원밖에 못 빼고 그 이상은 16.5% 세금을 뜯어가는데, 이거 조삼모사 아니냐? 차라리 그냥 일반 계좌에서 하는 게 낫지 않냐?”
결론부터 말씀드리면, 설령 한도를 초과해서 16.5% 세금을 물더라도 연금 계좌가 ‘압도적으로’ 유리합니다.
1. 세율 비교의 함정 (22% vs 16.5%) 해외 주식 직접 투자(직투)의 양도소득세는 22%(수익 기준)이고, 연금 계좌 초과 인출 시 세금은 16.5%(전체 인출액 기준)입니다. 언뜻 보면 “전체 금액에 때리는 16.5%가 더 큰 거 아니냐?”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. 하지만 여기엔 ‘이미 받은 혜택’이 빠져 있습니다. 연금 계좌는 투자 원금에 대해 매년 13.2%~16.5%의 세액공제(현금 환급)를 이미 받았습니다. 이를 고려하면 실질 세율은 훨씬 낮아집니다.
2. ‘과세이연(Tax Deferral)’의 복리 효과가 깡패입니다. 일반 계좌는 매년 배당소득세를 떼거나 매매할 때마다 세금을 고민해야 합니다. 세금으로 나간 돈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일하지 못합니다. 반면, 연금 계좌는 20~30년 동안 세금을 한 푼도 떼지 않고 원금+수익에 재투자합니다. ‘나중에 낼 세금’까지 내 계좌에 남아서 스노우볼을 굴려주는 것입니다. 이 효과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, 나중에 16.5%를 떼더라도 최종 수령액은 일반 계좌보다 훨씬 많아집니다.
3. 시간의 가치 (가장 직관적인 비유) 연금저축을 의심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. “당신은 누군가에게 1억 원을 빌려주고, 30년 뒤에 이자 한 푼 없이 딱 원금 1억만 돌려받는 조건이라면 빌려주시겠습니까?”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절대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. 30년이라는 시간과 그동안 불어날 이자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니까요.
연금 계좌의 과세이연이 바로 이 원리입니다. 국가에 지금 당장 내야 할 세금을 30년 뒤로 미루고, 그 돈을 내 계좌에서 굴려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.
4. 결론: 인출 계획은 ‘은퇴 5년 전’부터
연금저축 투자는 마라톤입니다. S&P 500 ETF를 모으는 것이 ‘체력 관리’라면, 인출 전략은 ‘결승선 통과 요령’입니다.
- 1순위 자금(비과세)은 비상금으로 쓴다. (언제든 인출 OK)
- 2순위 자금(퇴직금)은 최대한 늦게 받는다. (과세이연 효과 극대화)
- 3순위 자금(수익금)은 연 1,500만 원 이하로 받도록 세팅하되, 필요하다면 과감히 더 뺀다. (16.5%를 내도 과세이연 효과로 인해 이득이다)
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(John Bogle)은 이렇게 말했습니다.
“투자는 (비용과 세금을) 지불하지 않은 만큼 얻어가는 게임이다.” (In investing, you get what you don’t pay for.)
수익률은 시장이 주는 것이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, ‘세금’과 ‘비용’은 우리의 선택으로 확실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. 연금저축 계좌를 통해 나가는 세금을 막는 것, 그것이 바로 부자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.
마지막으로, 이렇게 불린 자산은 본인 사후에도 해지 없이 ‘배우자 승계’가 가능합니다. 내 노후뿐만 아니라 가족의 미래까지 책임지는 진정한 ‘평생 계좌’인 셈입니다.